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리(안말, 새말, 벅수골, 미라울)
경기도에서 나무장승이 유난히 많은 곳이 광주시다. 벅수 외의 문화유산도 많고 자연환경도 좋은 편이나 난개발로 정리를 하다만 듯 어수선한 느낌이 들어 썩 머물다가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벅수와 짐대에 있어서만은 남한산성면 엄미리를 비롯한 광주시 일원의 마을들에서 꾸준히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찾아보아야 한다. 더구나 요즈음 보기 힘든 이정표 구실을 하는 ‘노표장승’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벅수골이라는 지명 등으로 보아 이곳의 노표장승도 장승의 구실보다는 마을지킴이로서 벅수의 역할이 주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긴 병자호란의 고통이 새겨진 곳이 남한산성이다. 이 산성으로 오르는 고개를 은고개(奄峴)라 하며 바로 이 지역이 엄미 2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엄현과 미라울에서 한 글자씩 따서 엄미리라 지었다. 엄미리는 안말, 새말, 벅수골, 미라울로 나누어져 있으며 마을들이 생긴 지는 500여 년이 넘었다고 한다. 미라울은 마을 이름이 아름다워서 지명유래를 찾아보았더니 밀양 박 씨가 묘를 쓴 후, 밀양골이라 부르다가 미라울이 되었다고…! 엄미리도 그렇고 미라울까지…. 지금은 엄미 2리를 행정 명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이 마을의 들머리에 벅수와 짐대가 함께 세워져 있다.
본래 예로부터 장승배기였던 안말의 당산은 중부고속도로 건설 때 없어졌다. 지금은 은고개에서 새말로 들어가는 산기슭의 새말당산에 장승과 짐대가 함께 세워져 있고 미라울의 들머리에도 있다. 그러나 정작 벅수골에는 벅수가 없다. 새말 당산에는 서쪽에 천하대장군이, 동쪽에 지하여장군이 여러 기 세워져 있다. 평범한 나무 벅수인데, 지하여장군의 이름에 대해서는 지하대장군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두하의 저서『벅수와 장승』에는 이곳 벅수의 이름이 지하대장군이라고 쓰여 있는 사진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된 엄미 1리의 안말 벅수는 주로 장신이라 불렸는데,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라 이름 지어져 있다. 근래에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하여장군의 이름에는 은연중 남존여비의 생각이 담겨있다. 그리고 암장승이라 하여 내외를 하기 때문에 길가를 피하여 계곡 안쪽에 숨겨 세워놓았다. 마뜩잖다!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의 문화적 실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본질에 대한 연구와 소박한 삶의 철학에는 소홀하고 권위적인 기득권 유지만을 위한 욕망만이 찌꺼기처럼 남겨져 있다.
새말당산의 나무벅수는 원통형 오리나무의 앞면을 잘 다듬어 약간의 얼굴 모양을 새긴 후에 먹물로 마무리하였다. 서쪽의 남벅수는 수염을 달고 사모를 썼으며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새긴 장승도 있고 몸통에 천하대장군, 서울 칠십\리, 수원 칠십\리, 이천 칠십\리가 먹물로 쓰여 있다. 동쪽의 여장승은 민머리에 눈은 퉁방울눈을 새기고 코가 튀어나오도록 볼을 파냈다. 새말과 미라울의 벅수 곁에는 오릿대가 하나씩 세워져 있다. 미라울의 경우도 새말과 거의 비슷하게 벅수를 만들었으며 암벽 밑에 벅수를 세워 둔 것이 다르다. 벅수골과 미라울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음력 2월 초에 산신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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