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승탑

돌에 새긴 하늘나라, 승탑

by 햇살과 뜨락 2023. 5. 6.

1. 머리글

불에 타기 전의 쌍봉사 목탑과 쌍봉사 철감선사탑

  전라도 땅 화순의 사자산에 터를 튼 쌍봉사에 가거든 꼭 절 뒤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승탑 하나를 가슴에 가득 부둥켜안아야만 한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화강암을 그토록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듬어 놓은 장인정신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깊은 불심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새긴 형상들에 곧 살아 움직일 듯한 생동감을 불어넣은 예술혼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한 복판에 솟아있는 수미산이라는 부처님의 자리,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현실로 옮겨 놓은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 깨달음을 얻어 이미 부처가 되어버린, 속세의 인연과 업을 모두 끊어버리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경지에 오른 철감대선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이 사리탑은 우리나라의 석조조형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남북국시대인 9세기 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팔각원당형 승탑(八角圓堂型 浮屠)들은 유난히 아름다운 새김솜씨를 보여준다. 풍부한 감성과 날카로운 감각까지를 함께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석조조형의 예술적 경지를 살피는데 더할 나위 없는 문화유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승탑들은 절의 한 켠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칫 감상의 기회를 놓치기 쉽다. 요즘은 대부분 절의 입구에 한데 모여 승탑전을 이루고 있지만, 쌍봉사는 물론이고 연곡사, 태안사, 보림사 등의 팔각원당형 승탑들은 대부분 절 뒤나 옆으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 최초의 예배대상이었던 탑은 건축적 요소가 중심이지만 승탑은 조소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불탑에 비해 정교하고 섬세한 새김솜씨를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불교의 이상향인 극락세계를 형상화하였으므로 나름의 조형적 창의성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시 사람들의 피안의 세계에 대한 불교적 세계관과 미의식, 그리고 전각(殿閣)을 비롯한 목조건축물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한 편으로 승탑에는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는 대승의 여래장 사상(如來藏 思想)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또한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경전 밖에 따로 전하니 사람의 마음을 올곧게 가리켜 성품을 보고 깨달음에 이른다’는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경지, 즉 선불교의 원리가 함께 내포되어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승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변을 따라가는 환상의 승탑기행  (1) 2023.05.07
승탑의 기원  (1) 2023.05.07
승탑이란?  (3) 202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