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의장군 예장석묘(全尙毅將軍 禮葬石墓, 기념물 제3호)
광주 북구 화암동 산239
이 예장석묘는 조선 인조 때 무신(武臣)으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後金 : 淸)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구성도호부사(龜城都護府使) 전상의 장군을 모신 묘소이다. 장군은 1575년(선조 8)에 광주 서구 구동에서 전용(全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력이 뛰어났는데, 특히 활 솜씨가 출중했고, 29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첫 벼슬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에 일어난 정묘호란 때 안주성 전투에서 중영(中營)을 지키던 평안병사 남이흥(南以興)과 안주목사 김준(金浚)이 연일의 싸움에 병력과 화살이 바닥나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자 장군은 총탄•화살을 수습하여 병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혼자 백상루에 올라 밀려드는 적을 향하여 활을 쏘았지만 적이 육박하자 최후가 이르렀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적들이 “충신열사의 시체는 소중하게 모셔야 한다”고 말하고 정중히 묻고 따로 표를 세웠다 한다.
난이 끝난 후 자헌대부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資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事)에 추증되고, 시신을 안주로부터 광주 무등산으로 옮겨 예장하였다. 인조는 친히 제문(祭文)을 짓고 예조정랑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장군은 1682년(숙종 8) 안주의 충민사에 배향되었고, 1684(숙종 10)에는 동구 지산동 화산마을에 충신정려(忠臣旌閭)가 세워졌다. 1849년(헌종 15)에 광주의 경열사와 제주의 귤림서원에도 배향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리게 되었다. 1979년 사단법인 전상의장군 유적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북구 화암동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1982년 사우(祠宇) 건립에 착수하여 1985년 충민사를 준공하였다.
묘의 둘레는 4.9m이며 주위에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고, 장군과 부인 풍천 임씨가 합장되었다. 묘 앞에는 1857년(철종 8)에 세운 묘비가 있다. 장군의 유품은 갑옷, 투구, 활, 검 등의 무기류와 교지(敎旨), 완문(完文), 완약(完約) 등이 있는데,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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