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천사 마애여래좌상(雲泉寺 磨崖如來坐像, 유형문화재 제4호)
광주 서구 쌍촌동 99-7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 위치한 운천사. 태고종 사찰인 운천사는 운천저수지에서 뒤편의 길을 따라 금호지구 쪽으로 가다 보면 안내판이 나온다. 거기서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담한 운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운천사는 입구에 대나무들이 환영하듯 줄지어 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맑고 편안하게 마음의 끈을 풀어주는 좋은 입구다. 자연의 사천왕상이 먼저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전과 마주서게 된다. 대웅전에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사찰이 먼저 지어지고 불상이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곳의 마애불은 부처가 먼저 자리 잡고 후에 그곳에 사찰이 지어진 경우다. 마애불이 있는 운천사도 그렇게 지어진 절이다. 자연 암벽에 불상이 새겨지고 그 암벽 위로 세운 전각이 대웅전이다. 그래서 불상에 비하면 법당이 작은 지도 모른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숨을 탄 석불의 모습에 숨이 멎을 듯하다.
넓적한 얼굴에 긴 눈, 우뚝 솟은 코와 길게 늘어진 귀, 얼굴에 비해 큰 몸체, 특히 유난히 긴 팔을 하고 앉아 계신 부처. 사람들은 어깨는 넓지만 앞가슴이 발달하지 않은 모습과 손과 발이 커서 딱딱하다고 한다. 또 어색하게 표현된 손가락을 보고 둔탁하고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고려시대 마애불 양식이 나타나는 주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애여래좌상의 모습은 박제된 부처가 아니라 실제 숨 쉬고 살아 계시는 생동감과 입체감에 지금 옆에 계신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마애불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다. 마애불을 바라보면 걱정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자애로우신 웃음을 만면에 머금고 한번쯤 눈을 떠, 소원만 늘어가는 우리를 부질없다며 바라보실 것도 같다.
운천사의 마애불은 고려시대 석조 불상이다. 마애불이 가장 많이 조성된 전성기는 고려시대다. 이 시기에 마애불은 미래에 오실 부처인 미륵불 개념으로 정착 되면서 크기도 다양하게 전국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처가 오히려 사람이 서 있는 동일한 위치나 땅으로 내려오면서 삶터의 민중과 가까이 하는 경향을 보인다. 운천사 마애불도 높은 산이나 벼랑이 아니라 민중과 가까운 곳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불화와 불상이 권문세족의 후원을 입었다면 아마 마애불은 힘없는 민중들의 염원을 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운천사 마애불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원효대사가 무등산 원효사에 계실 때 일이다. 서쪽하늘에 서기가 가득함을 보고 제자 보광화상을 보냈더니 큰 바위에서 빛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그곳에 새긴 불상이 운천사 마애불이다. 두 손을 배 위에서 모으고 손에 약그릇을 감싸 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로 보이는 이 마애불은 아마 만든 이의 소원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도심 속으로 내려와 우리의 목마르지 않는 샘이 되고 싶은 운천사 마애불. 아마 유난히 긴 팔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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