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귀정(晩歸亭, 문화재자료 제5호)
광주 서구 동하길 10(세하동)
두 개의 연못을 가르고 세 개의 정자가 성처럼 세워져 있는 풍경. 아니 세 개의 정자가 한 개의 연못을 두 개로 갈라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영화나 소설 속의 장면이 아니다. 정자들이 한 줄로 늘어서 무리를 이룬다니,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광주 도심을 약간 벗어나기에, 광주의 농촌마을이라 해야 할까? 서구 서창동 세하마을에 자리한 만귀정이 바로 그런 풍경을 품고 있다.
또한, 주변은 서창향토문화마을로 조성되어 도심의 향토색을 진하게 느낀다. 만귀정은 연못 한가운데 세워진 수중정자다. 작은 정자 세 개가 작은 다리를 끼고 나란히 일자로 서 있는데, 그 둘레를 연 밭이 싸고 있다. 이른바 연못 위에 세워진 정자다. 4,600㎡ 남짓 되는 연못의 연 잎에 물오르고 연꽃이 한창 피어나는 늦여름 어스름 해 질 녘 만귀정을 찾으면 “아! 이래서 만귀정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풍광이 만귀정이라는 정자 이름과 딱 어울린다.
세 개의 정자는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만귀정, 습향각(襲香閣), 묵암정사(默庵精舍)로 제각각 이름표도 달고 있다. 나름대로 그 정자들 이름이 품고 있는 내력이나 의미를 알고 나면 더 신비하고 정겹다. 만귀정은 홍성 장 씨의 선조인 만귀 장창우가 1671년 이곳에 터를 잡고 못을 팠으며 파낸 흙으로 동산을 만들고 수중에 서당을 세워 후학들을 가르치던 옛터로 알려지고 있다. 이 터에 후손들이 장창우의 덕을 기리기 위해 1934년에 세운 정자다.
만귀정에서 꼭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있다. 두 번째 정자 습향각 쪽을 향해 기다란 석재 하나가 놓여 있다. 석재는 앞뒤로 취석, 성석이라는 두 글자를 한자로 새겨 놓았다. 습향각으로 들어갈 때 취하고, 나올 때는 깨서 나오라는 말이다. 그 옛날 이런 글자를 새긴 선현들의 지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만큼 만귀정은 자연에 취하고, 문에 취하게 하는 사시사철 색다른 풍치를 지니고 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습향각으로 발길을 옮기면 연못 한복판에 한 칸짜리 정자로 서 있는 습향각은 1940년 묵암 장안섭이 ‘연꽃향기 엄습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세웠다. 봄이 되어 연잎이 물 위로 얼굴을 내밀어 늦여름까지 연밭이 무성할 때면 이름 그대로 ‘연꽃향기 엄습한다.’ 습향각에서 또 하나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세 번째 정자 묵암정사이다. 이 다리와 같은 방향으로 길게 드러누운 채 뻗어 있는 묵은 고목을 보면서 ‘흠칫’ 놀란다. 이 고목이 그 옛날 만귀정의 흔적들을 새기고 있을 터인데, 세월의 흔적과 질긴 생명력이 대단하다.
제일 안쪽에 자리 잡아 발길이 가장 닿지 않는 곳이지만 묵암정사에 걸터앉아 앞서 건너온 두 개의 정자를 바라보며 사색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드문드문 찾는 관광객을 연 밭의 무성한 잎들이 반기고, 묵암정사 뒤로 울타리처럼 둘러싼 대숲이 바람에 서걱거리면 그 소리 또한 서늘하면서 상쾌하다.
만귀정의 봄은 화사한 벚꽃이 찾는 이를 반기고, 여름에는 연못가에 백일홍 꽃 붉고 연꽃이 절정에 달한다. 너른 연 잎 사이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비치는 만귀정 연못의 고요함은 곧바로 가을을 맞는다. 연꽃의 청아함이 어우러지면서 붉은 상사화 또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겨울이면 노송들의 가지에 얹힌 설화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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