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발상지-광주일고(光州學生獨立運動發祥地-光州一高, 기념물 제26호)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 237번길 33(누문동 )
1929년 11월 3일에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였던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부지 일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광주고보는 1920년 5월 1일에 현재의 무등극장 자리에 위치한 ‘광주 광산관’에서 개교하여, 1922년 4월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광주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광주제일고둥학교 교내에는 당시의 학생운동을 추념하기 위하여 1954년에 설립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1997 년에 건립된 ‘학생독립운동 기념 역사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학생운동과 관련된 기증품, 사진, 졸업생 명부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광주학생운동은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만주•일본 등지까지 영향을 미친 학생들의 일련의 가두시위, 동맹휴교운동을 지칭한다. 이러한 운동이 광주지역에서 촉발된 경위는 성진회라는 학생 비밀결사단체의 존재와 광주고보•광주농업•광주사범•광주여고보 등 이 지역 학교들의 항일투쟁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광주학생시위는 일제의 언론통제로 신문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광주학생시위의 소식이 입소문을 통해 전파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광주학생운동은 학생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3•1운동과 6•10만세운동에서도 학생들의 시위행진은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참가한 학생층은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조직되고 자각된 상태에서 참여하였던 것보다는 소수의 자각된 선구자로 참여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층은 동맹휴학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바탕으로 학생대중을 자각시키고 조직화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층을 하나의 대중운동의 역량으로 결집하여 민족운동 대열에 합류하고, 나아가 이를 선도하였던 것이다.
광주학생운동은 이처럼 소수의 자각된 학생층의 움직임이 아니라 학생대중의 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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