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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광산구)

양씨 삼강문(梁氏三綱門, 기념물 제11호)

by 햇살과 뜨락 2023. 6. 1.

양씨 삼강문(梁氏三綱門, 기념물 제11호)

광주 광산구 박호동 산131-1

  송정리 영광통에서 영광으로 향하는 22번 국도를 달리다 호남대학교를 지나 송산유원지로 꺽어진다. 송산유원지는 황룡강과 평림천이 합쳐지는 곳에 생성된 모래톱이다. 여기서 어등산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 곧 어등산 자락에 소담하게 내려앉은 ‘박뫼마을’에 다다른다. 양씨삼강문은 널찍한 마을 입구, 당산이 있음직한 곳에 잘 가구어져 있다.

  양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자리 잡고 있다. 송정동에서 영광통을 지나 호남대학교를 막 넘어서면 송산교 유원지로 가는 샛길이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다시 동명고를 지나 야트막한 산자락을 감고 돌면 박뫼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너른 들판을 가슴으로 감싸 안은 채 몇 호의 민가가 사이좋은 얼굴로 늘어서 있는 곳이다. 마을 왼편 귀퉁이에 이르면, 넉넉한 표정으로 들판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양씨삼강문이 수줍은 처녀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1985년 2월 25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양씨삼강문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忠愍公 梁山璹, 1561~ 1593) 일가 7인의 충, 효,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 13년에 건립한 정려이다. 원래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을 모셨으나, 회진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 문중에서 모시고 있어 현재는 6분의 정려만을 모시고 있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충신으로 모셔진 양산숙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金千鎰, 1537~1593)장군과 함께 순절한 무인이다. 효자로 모셔진 양산룡과 양산수는 양산숙의 형제로, 정유재란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인물들이다. 절부로 모셔진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 박씨는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으며, 그의 부인인 광산 이씨 또한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김광운에게 출가한 누이 제주 양씨는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하였다.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자존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 같이 버렸던 사람들을 기리는 이곳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임류정(臨流亭)

  임류정은 송천 양응정의 정자이다. 원래 자리는 양씨삼강문 위에서 황룡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었으나 지금은 양씨삼강문 앞에 놓여져 있다.

 

임류정

松梢淸月上悠悠(송초청월상유유) 솔가지 끝에 달린 맑은 달이 한가로워

把酒臨流散百憂(파주임류산백우) 온갖 근심 떨쳐 버린 임류정의 술자리

人世幾看榮又悴(인세기간영우췌) 인간사 흥망성쇠 그 얼마나 보아왔던가

醉中渾覺此生浮(취중혼각차생부) 이 인생이 헛되단 것 취해서도 알겠구려

                                                                                                                 기대승(奇大升)

 

  공섭(公燮)은 정철의 스승인 양응정의 자(子)이고 임류정은 그의 정자이다. 달밤에 정자에서 선비들이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면서 시를 주고받는 모습이 무척 한가롭고 고고하다.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분위기다. 그러나 아름다운 경치와 맛 좋은 술과 마음 맞는 친구가 근심을 물리쳐 주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어서 근심이 달아난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근심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