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 존재(存齋).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문민공 기준(文愍公 奇遵)의 조카이다. 기묘사화로 집안이 어렵게 되자, 아버지 기진(1487-1555)이 현 광주광역시 신룡동 용동 마을에 오남재를 짓고 정착하였으며 이곳에서 태어났다.
154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1년 알성시(謁聖試)에 응했으나 당시의 시험관 윤원형의 방해로 낙방했다가 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홍문관부수찬, 병조좌랑, 이조정랑,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했다.
1567년 기묘사화와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으로 죽음을 당한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에 대한 추증을 건의하는 등 개혁에 앞장섰으며 성균관대사성, 공조참의 등을 지냈다. 1572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그해 11월 고부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황과 13년 동안(1558~1570) 학문과 처세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특히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사칠 논변(四七論辯)은 조선성리학에 깊은 영향을 끼친 논쟁이다. 제자로는 정운룡(鄭雲龍), 고경명(高敬命), 최경회(崔景會) 등이 있고 광국공신(光國功臣) 덕원군(德原君),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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