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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화재 (남구)14

고원희 가옥(高元熙 家屋, 문화재자료 제8호) 고원희 가옥(高元熙 家屋, 문화재자료 제8호) 광주 남구 압촌길 78(압촌동) 고원희 가옥은 고경명 옛 집터에 후손인 고종석씨가 1917년에 지은 것으로 광주광역시민속자료 제8호이다. 현재 고경명 17대 후손인 고원희 씨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 고원희 가옥은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과는 아주 다른 느낌을 준다. 팔작기와지붕 집이지만 화려하거나 웅장하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엄정한 기품이 있고 호방함이 있고 단박에 왜구의 기세를 눌러줄 기백이 한껏 서린 가옥이다. 가옥 뒷산의 청청한 푸른 소나무와 이것저것 걸리는 바가 없이 이루어진 제봉산이 고경명장군의 기백을 말해주고 있다. 고원희 가옥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소나무산 아래, 오른편에 건축된 부조묘이다. 부조묘에서 풍겨 나오는 경건함이 몸과 마음.. 2023. 6. 10.
고씨 삼강문(高氏 三綱門, 기념물 제12호) 고씨 삼강문(高氏 三綱門, 기념물 제12호) 광주 남구 압촌길 66(압촌동) 고씨 삼강문은 임진왜란(1592)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선생 일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무덤이나 마을 앞에 세우던 붉은 문)으로, 1충(忠), 3효(孝), 2열(烈), 1절의(節義)의 7명이 표창되어 있다. 1충은 고경명, 3효는 그의 장남 종후, 차남 인후, 손자 부금이며, 2열은 그의 딸 장흥고씨와 조카며느리 광산정씨, 1절은 그의 동생 경형이다. 고경명은 조선 명종 13년(1558)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24년(1591) 동래부사를 끝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차남 인.. 202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