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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무돌길

무돌 4길 (금곡숲길)

by 햇살과 뜨락 2023. 5. 8.

무돌 4길 (금곡숲길)

 

  ‘금곡숲길’이라 이름 지어진 이 길은 금곡마을에서 담양군 남면 소재지인 연천리로 이어진다.

금곡숲길

맛깔스러운 소나무 숲길과 맑고 깨끗한 증암천(甑巖川) 물길을 거슬러 가면서 마을들 사이로 삶의 흔적을 어루만지듯 걷는 길이다. 금곡마을에서 계곡 건너편 산자락 아래에 마련된 ‘원효계곡 숲길’은 왼편으로 계곡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다. 이 오솔길은 평촌마을 입구의 금산교에서 포장도로와 만난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적송의 둥치를 더욱 발갛게 물들인다. 이 숲길은 나무하는 사람들이나 간간히 이용하던 길이어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에서 포장된 도로보다는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로 조성했다 한다.   짧은 숲길에 아쉬움을 남기고 새로 난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본래 무돌길은 여기서부터 평촌, 동림, 반석마을을 지나면서 증암천을 곁에 두고 독수정이 있는 연천리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충효동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 살필만한 문화유산들이 많아 길을 바꿔 걷기로 한다. 충효동을 한 바퀴 휘돌아 다시 평촌으로 가려는 것이다. 금산교를 건너 금곡 마을 쪽으로 가면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시멘트 포장 농로가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새나드리들’과 ‘평모들’이라 부르는 제법 너른 들을 만난다. 논배미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논두렁길을 걷는 것도 숲길 못지않은 나름의 맛이 있다. 비록 시멘트로 포장되기는 했어도 괜히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안해지는 그런……. 더구나 황금 들녘이 펼쳐지는 계절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를 지나 충효동에 이른다. 나지막한 용두산(109m)자락에 기대어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석저촌(石底村)이라 불렸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조가 김덕령장군의 공적을 치하하면서 마을 이름을 하사한 후에 충효리로 바뀌었다. 아담하고 옴팍한 지형의 충효동은 1km 정도 되는 반월형 성의 흔적이 남아있어 성안, 또는 성내마을이라고도 한다. 충효분교에서 모퉁이를 돌아 마을로 들어서면 정자 곁 당산에 오래 묵은 두 그루의 팽나무가 금줄을 두른 채 반긴다. 충효동 할아버지 당산으로 지금도 매년 정월 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낸다. 할머니 당산은 마을 서쪽, 광주호 가에 있는 논두렁을 돋우고 선돌과 팽나무를 모셔놓았다.

  마을 안쪽 용두산 자락 높직한 곳에 김덕령장군이 살던 집터와 사당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마을의 전경도 살필 겸 올라가 장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잠시 머리를 조아린다. 광주호를 바라보는 마을 서쪽은 산자락이 없어 왠지 허전한 느낌을 준다. 그런 까닭으로 이 허한 곳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조성했는데, 바로 거기에 400여 년이 훌쩍 넘은 커다란 왕버들이 있다. 왕버들 곁에는 지방기념물 제4호인 아담한 정려비각이 하나 세워져 있다. 김덕령 장군 일가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792년 세운 비각으로 정조가 김덕령 장군과 금산에서 전사한 형 덕홍, 순절한 처 흥양 이 씨, 노모에게 효성이 지극했던 아우 덕보를 표창하기 위해 마을 이름을 하사한 표리비(表里碑)를 모시고 있다.

  지방기념물 제16호인 충효동 왕버들은 둘레가 6m가 넘을 뿐 아니라 꿈틀대는 용과 같은 수형을 가지고 있어 한참 눈길을 머물게 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본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 즉 소나무 한 그루, 매화나무 한 그루, 왕버들 다섯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하나 지금은 왕버들 세 그루만 남아 마을사람들의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주호 주변을 공원화한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충효동 왕버들에서 바로 길 하나 건너에 있다. 2006년에 개장한 이 공원은 광주호 상류 쪽에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을 조성해 놓았다. 거닐면서 다양한 야생화와 나무들, 수생식물들, 그리고 물이 많으면 잠겨버리는 충효동 고인돌도 살펴볼 수 있어 휴식공간으로 그만이다. 충효동에서 입석골을 지나 금곡마을 쪽으로 가다가 덕의 저수지 옆길로 들어서서 한참 광주호변을 걸으면 나타나는 개선사지 석등도 볼만하다. 신라 진성여왕 때인 891년에 세워진 이 석등은 장구형의 독특한 석등으로 새김솜씨가 유려하고 아름답다. 보물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부분적으로 훼손되지 않았다면 국보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두 곳 모두 접고 충효동에서 곧바로 증암천을 향해 간다. 다리를 건너기 전, 푸르름을 두른 집이라는 환벽당(環碧堂) 가는 길로 접어드니 맛깔스럽게 휘어진 소나무들이 눈에 즐겁다.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 金允悌)의 별당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에 골기와를 올리고 2칸짜리 방을 들인 정자이다. 그는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교리를 거쳐 나주목사로 있다가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충효리로 돌아와 집 뒤에 이 정자를 지었다. 가을의 초입이면 꽃무릇이 아름다운 이곳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 축대를 쌓은 후원 형태의 정원을 함께 갖추고 있다. 송강 정철이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환벽당 입구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 증암천 가의 용소와 조대(釣臺)에는 소년 정철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환벽당 뒷문으로 나와 탱자나무 길을 따라 취가정(醉歌亭)으로 향한다. ‘평모들’을 바라보며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이 정자는 1955년 후손들의 의해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김덕령장군이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문신인 석주 권필(石州 權鞸)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읊은 취시가(醉時歌)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벼락을 맞아 흔적만 남은 멋스럽던 소나무와 비석에 적힌 취시가가 애처롭다. 취가정에서 내려와 평모들을 가로질러 다시 평촌마을로 향한다.

  왜가리가 여리 여리한 몸으로 증암천에 발을 담그고 먹이사냥에 열중하고 있다. 증암천은 담양군 남면 정곡리 절골, 무등산 깊은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로 충효동 근처에서는 창계천(蒼溪川), 자미탄(紫薇灘)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광주호로 모여드는 영산강의 지천이다.

원효계곡은 풍암천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충장골 숲길에서 내려온 물길과 삼괴정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흐르다 평촌에서 합쳐진다. 이 물길은 소쇄원 못 미쳐 닭뫼마을에서 증암천과 다시 하나가 된다. 이 증암천 건너편에 식영정, 서하당, 가사문학관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민간정원인 소쇄원도 자리 잡고 있다.

  평촌교를 지나는데 돌을 쌓아 올린 조탑(造塔) 하나가 눈에 띤다. 새로 조성해 놓은 것 같다. 평촌에는 12 당산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당산제를 지내지 않아 굳이 찾아볼 의미가 없다. 평촌을 지나 동림까지 시멘트 포장길을 걷는다. 동림마을까지는 광주광역시이며 반석마을부터는 담양군이다. 반석마을 안 길을 지나 증암천을 바로 곁에 두고 걷다가 연천리 산음동에 있는 독수정원림에 이르러 금곡숲길을 마감한다.

연천리라는 지명은 이 마을에 제비의 둥지와 같다는 연소혈(燕巢穴) 명당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앞을 흐르는 ‘제비내’라는 냇물의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연천리는 가을이 깊으면 마을이 온통 노랗게 물든다. 마을 곳곳에 은행나무가 많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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