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 1길(싸리길)
‘무돌길’을 걷는다. 한적하고 소박한 그 길의 이름은 무등산을 우러르며 산자락을 한 바퀴 휘돌아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등산이 한때 무돌뫼라 불렸던 적도 있으니 제법 그럴듯한 이름이다. 무돌길은 화려한 자연경관이나 규모 있는 문화유산이 주는 경탄과 벅차오르는 가슴 대신 소박함과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길이다. 등산이 힘겨운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과 편한 차림으로 접근할 수 있는 나름의 맛을 갖춘 길이기도 하다. 거기에 찬찬한 살핌과 느긋한 걸음, 우연한 만남들을 소중하게 하려는 마음자세라면 걷는 즐거움과 잔잔한 정겨움을 여운으로 남겨주는 그런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걷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 잡았다. 아마 ‘제주 올레길’이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걷는 여행이 열풍처럼 번지면서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자연을 벗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들이 개발되고 있다. 자동차 여행에 식상한 사람들이 보다 섬세하고 느긋하게 자연의 품에 안겨들어 삶의 현장을 체험하려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한편 걷는 여행이 사색의 시간과 돌아봄의 여유, 그리고 건강까지를 가꿀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바라보고 스쳐가는 여행에서 삶을 체험하고 깊이 있는 문화적 접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2010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에서는 무돌길이라는 이름의 무등산 자락길을 개발하였다. 백여 년 묵은 지도를 토대로 무등산을 한 바퀴 휘돌아 걷는 길을 우리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무돌길은 모두 15길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의 길이 3~4㎞ 정도여서 한두 시간에 가볍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길은 1910년대의 지도에서 찾아낸 길로 길게는 오백 여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생활문화를 소통하는 핏줄 같은 길이었다 한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대부분의 길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거의 이용하지 않아 묻힌 길들은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복원해 놓았다.
문화유산답사를 즐기다보니 그런저런 이유로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몇 차례 다녀왔던 경험으로 걷는 여행의 묘미를 나름 알아가던 터라 우리 고장에 개발된 무돌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주변의 자잘한 문화유산들과 생태, 삶의 흔적들도 함께 살필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첫 번째 무돌길은 각화동(角化洞)에서 시작하여 들산재라는 고개를 넘어 신촌마을에서 끝난다. 각화동은 마을 서쪽에 있는 삼각산(三角山) 자락에 있는 동네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문화동의 관할로 되어 있다. 이 마을은 근래에 광주 외곽순환도로 나들목이 건설되면서 과거의 경관이 많이 변하였고 삭막해지기 쉬운 조건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2000년부터
문화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제안하고 전문가와 행정기관이 이를 뒷받침해 주는 방식으로 마을 주민 스스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가고 있다. 시와 그림이 마을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소공원과 조각공원의 조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집 담장에 주민들의 애송시를 작품화해 시화판을 설치하는 소박한 사업이 주민들의 호응과 행정기관의 참여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싶어 하는 조급함을 참고 마을을 둘러본다. 담벼락의 시와 그림들, 대문을 장식한 문화문패, 지역 화가들이 참여한 골목갤러리 등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춘 마을이 각화동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뒤 각화동 저수지로 향했다. 외곽도로 너머 저수지로 가기 전, 백제 때의 고분인 각화동 석실분(石室墳)을 살핀다. 말끔하게 단장되어 예스런 느낌은 덜하지만 제법 규모 있는 옛무덤이다.
각화저수지 둑에 올라서면 들산재로 향하는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점차 길은 좁아지고 오르막이 된다. 예전 농사를 주로 하던 시절에 각화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군왕봉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걷는 고갯길에는 어린 편백나무들이 제법 향기를 내뿜는다. 어느새 도심의 매캐함은 사라지고 청량한 공기 속에 마음도 싱그럽다. 건강한 숲의 징표라는 잡목이 우거진 고갯길 정상에 오른다. 늦은 가을 오후라 쌀쌀한데도 땀이 등허리를 적신다. 내리막길에서 멀리 등촌마을이 보인다. 목적지인 신촌마을은 고갯길을 다 내려가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마을은 제4수원지에서 내려오는 석곡천이란 이름의 물길을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다.
산길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면 함평 이 씨의 재실인 동촌재(東村齋)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어 겉모습만 살피고 물길의 흐름을 따라 균산정(筠山亭)으로 향한다.
마을은 가을 오후의 햇살에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고 돌담 곁에 때늦은 봉선화가 애처롭다. 균산정은 남평 문 씨(南平 文氏) 선산인 비암술산 자락에서 석곡천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균산’이란 대나무의 살갗처럼 추운 겨울의 눈보라에도 그의 절개가 변치 않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 정자는 1921년 문인환이 선친인 균산 문용현(文龍鉉)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담장과 자그마한 대문까지 갖춘 독특한 정자로 도리 기둥과 골기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3칸의 아담한 정자이다. 다만 전망이 툭 틔어 있지 않아 안타깝다. 균산정 왼쪽에는 석축 토담이 둘러 있고 그 옆에 기암괴석이 있으며 담장 밖에 역시 문인환이 세운 죽파재(竹坡齋)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죽파재 위에는 괴양정(槐陽亭)이 있으나 건물의 반 이상이 무너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라는 말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모두 남편 문씨 집안의 유적들이다.
균산정에서 석곡천을 건너면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마을 입구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있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 중 할아버지 당산이라 부리는 나무는 400년 이상 되었다고 하니 마을과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바로 곁에는 조금 작은 느티나무가 당산을 이루고 있는데, 이 두 나무 사이에 2개의 입석이 서있다. 그중 큰 것은 인공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으며 높이는 130cm 정도이다. 몇 년 전까지는 당산제와 함께 정월 대보름날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입석 아래에 묻는 지신제를 지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 없어졌다고 한다. 가을 햇살이 사그라지며 추수 직전인 논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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