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벽당(環碧堂, 기념물)
광주 북구 환벽당길 10(충효동)
가사문학관에서 자미탄 다리를 건너면 왼편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만날 수 있다. 잠시 조선 중기 시대로 돌아가는 듯싶은 숲길이 예사롭지 않다. 제법 가파른 층계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게 한다. 뒤를 돌아 바라보니 분지 속에 들어앉은 듯 능선이 가지런하고 지실 마을도 평화롭다. 고요하고 한가로움이 세상의 온갖 번민을 다 씻어내는 듯하다. 환벽당 가는 길은 이처럼 은근하고 수줍은 색시마냥 숨어 있는 품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주 목사를 지내고 향리에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던 사촌 김윤제는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환벽당이란 ‘푸르름을 사방에 둘렀다.’라는 뜻이다. 당호에 걸맞게 풍광이 아름답다. 정자 뒤편으로는 대밭이 울울창창하다. 그 옛날에는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자취도 없고 늙은 배롱나무만 기웃이 서 있는 게 인상적이다. 노송 몇 그루는 용비늘도 선명한 고목이다. 실히 몇 백 년은 살았음직한 나무가 경이를 넘어 외경심까지 자아내게 한다.
안개에다 구름 기운 겹쳐졌는데 / 거문고와 물소리 섞여 들리네
노을 사양길에 취객 태워 돌아가는지 / 모래가의 죽여 소리 울리고 있네
환벽당에 걸려있는 이 시는 임억령의 ‘환벽당’이라는 시다.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환벽당에 모여 교유하며, 환벽당에 관한 시를 쓰며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사촌 김윤제는 술 마시고 거문고를 타며 자연에 취하여 사는 생활을 즐겼다고 하니 마음과 뜻이 맞는 친구들을 불러 유유자적함이 어떠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아 송강 정철이나 서하당 김성원 같은 제자를 낳았으니 가히 가사문학의 산실로도 환벽당은 손색이 없다.
환벽당은 김윤제와 정철의 만남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김윤제가 낮잠을 자다가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이 예사롭지 않아 조대로 내려가 보니 비범한 용모의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소년은 화순 동복에 있는 누이를 찾아가는 소년 정철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정철은 스물일곱 살,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십여 년간을 김윤제를 비롯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송촌 양응정 같은 당대의 기라성 같은 문인 학자들을 스승으로 만나 학문과 시를 배우게 된다. 송강이 가사문학의 꽃을 피우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훌륭한 학자들과 스승들이 있었던 것이다. 훗날 김윤제는 그의 외손녀와 정철을 혼인시킨다.
전망 좋은 환벽당을 뒤로 하고 다시 돌층계를 내려서면 바로 조대쌍송을 향해 열려 있는 대문이 있다. 이미 거목이 돼버린 소나무와 조대의 바위는 지금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눈에 익다. 조대 아래 창계의 물은 소를 이루고 예전에는 뱃놀이도 행해졌다고 하니 물고기도 실하게 잡혔을 법하다. 쌍송을 사이에 두고 정철의 시비가 길손의 발목을 붙든다.
짝 맞은 늘근 솔란 조대에 세워두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갈대로 던져두니
홍료화 백빈주 어느 사이 지났는지 /환벽당 용의 소히 배 앞에 닿았더라
누대의 세월이 흘러도 선비의 푸른 기상은 살아남아 현대인들은 조상의 자취를 찾아 원근 각지에서 모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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