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기행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1513-1577)과 미암일기

햇살과 뜨락 2023. 5. 30. 09:49

미암일기(眉巖日記, 보물)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모현관(미암일기가 보관된 곳)

 

  이 책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유희춘선생의 친필일기이다. 지금 남아있는 일기는 선조 즉위년인 1567년 10월 1일부터 시작해서 1577년 5월 13일까지 대략 11년간의 일기인데 중간에 몇 군데 빠진 데가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개인의 일기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이며 사료로서의 가치도 대단하다.

   일기에 본인의 일상생활에 일어난 모든 일을 상세히 적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당시 상류층 학자들의 생활상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본인이 중앙의 요직에 있었던 만큼 선조 초년에 조정에서 일어난 사건은 물론 경외(京外)의 각 관서의 기능과 관리들의 내면생활 및 사회, 경제, 문화, 풍속 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선조 25년 이전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다 타고 없어져 『선조실록(宣祖實錄)』을 편찬할 때 사료가 없었으므로 이 책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와 더불어 선조실록의 첫 10년의 사료가 된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일기 초 중 제12책에는 부록으로 미암과 그 부인 송 씨의 시문(詩文) 및 잡록(雜錄)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판본을 포함하여 일괄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 중 3매를 전남대박물관에서 일시 보관했다가 현재는 후손들의 보존각(모현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최근에 번역본이 간행되었다.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1513-1577)

  본관은 선산,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으로 최산두(崔山斗)에게 배우고, 뒤에 김안국(金安國)에게 사사(師事)했다. 1538년 별시문과에 급제했으며, 1544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수찬·정언 등을 지냈다. 1546년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귀향했다가 이듬해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함경북도 종성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이곳에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황(李滉)과의 서신교환을 통하여 성리학에 대한 토론을 계속했으며, 이 지방 유생(儒生)들을 교육했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한 뒤 석방되어 대사성, 부제학, 전라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내고 낙향했다. 선생은 당시 사류들과 같이 문장에 뜻을 두지 않고 경학에 몰두하여 선조초에는 경연관으로 경사(經史) 강론에 주력했다. 『주자대전』을 교정하고, 선조의 명을 받아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을 편찬했으며 유교문화의 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저서에 『미암집』, 『속몽구 續蒙求』, 『역대요록 歷代要錄』, 『주자어류전해 朱子語類箋解』 등이 있다.

  담양 의암서원(義巖書院), 종성 종산서원(鍾山書院), 무장 충현사(忠賢祠) 등에 제향되었고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받았다. 부인은 여류시인인 송덕봉(宋德奉)이다.